노 경 희 개인전 <익명의 숲(Anonymous Forest)>

2019. 11.13 - 12.01


 

 


 
노경희는 숲을 그려왔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것이 울창하게 뻗은 나무들과 화면 중심에 흐르는 개울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풍경의 모습이다. 살짝 보드라운 느낌으로 초록이 주를 이루고 살며시 다가서면 잡힐 것 같지만 그림 앞에 다가서면 이내 혼돈하며 생각은 사라진다. 내가 거기에 들어가 있다는 착각으로 식물들을 차분히 살펴보지만 저마다의 방향으로 잎은 무성하기만 하다. 화면 전체의 색조는 빛을 잘 받아들여 생명체들은 편안했다. 그런데 이 빛은 최근들어 색과 섞이며 어두워지는 경향이 있다. 어디론가 가야할 것 같은 길을 안내하던 모습도 당연히 사라지고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상이다. 장면은 몰입이 되다가도 어느새 강박처럼 다가온다. 극명하게 숲을 묘사하고 있으나 더욱 밀도감이 높아져 오히려 아무것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접근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풍경을 보여주지만 길 보다 나무를 채우는 방식으로 동시에 애매모호한 것이 공존되는 양상이다. 울창한 숲으로 형상은 근접해 보여주다가 위에서 바라본 듯한 풍경은 짙푸른 녹색이 강해져 검은빛도 보인다.
작가는 줄곧 숲을 그려왔고 이는 재현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닮아 있다는 점에서 구상이지만 동시대를 전제로 한다면 그리는 이의 감성도 포함되어 추상도 된다. 하지만 소재로 오는 자연, 공간으로 인식되는 장소를 상상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지금처럼 나를 대변해 주는 방식의 매체들이 즐비한 걸 떠올리면 왜 풍경인가 라는 질문도 나온다. 설치미술이나 미디어 아트만큼 화려 하지도 않고 늘 곁에 있어 미처 생각하지 않는 거대한 존재로 일상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시선을 확 끌어당기지 않는다는 점도 어려운 면으로 다가온다. 꼭 무엇을 나타내야 한다는 점을 뒤로하고 다시 회화의 관점에서 언제나 결론은 구상 회화의 성격상 단순한 묘사가 아닌 밀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외형적 묘사로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되고 그렇다고 기술적인 면으로 치우쳐도 안 되는 난제가 있다. 그러기에 작가 의식 구조로 좀 더 치열한 작품 연구가 필요하다.
평범한 풍경으로 어딘가 닮아 있는 굳건하게 위로 솟은 나무도 있지만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휘어지면 휘어진 채로 그 현실로 살아왔을 생명체를 보고 있으면 생각은 깊어진다.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어느새 자라나 어른이 되어 살고 있는 모습이랄까. 이성적이고 냉정하다. 그래도 여전히 나무 한그루가 근접된 풍경은 고운 형태로 아름답다. 밤하늘 잎과 나뭇가지는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을 미래에도 살아갈 모습이다. 다층적 시점으로 동양적이지만 어두운 색채 안에서도 두드러지는 모습 나무들은 서양의 근대 낭만적 성격도 스친다. 실존적인 면에서 존재의 접근성으로 언제 어디서 만났거나 그것들 스스로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옛것과 지금의 시간은 공존한다. 달리 말하면 일상에서 쉽게 망각된 존재감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듯 회화 안 공간은 밀접하고 정밀하다. 존재를 발견하고 긍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존적 가치, 의미부여를 모색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오롯이 그림으로 담아낸다. 작가는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고 시간을 축척하듯 화면은 치밀한 구성으로 조형은 쌓인다. 무수히 반복되는 색으로 정밀한 터치를 사용한다. 마치 회화를 실험하듯 평면 안에 색은 자유롭게 화면을 부유한다. 형태의 밑그림 없이 구성되는 방식으로 조형은 하나 둘 가로와 세로 방향으로 점을 찍듯 나열되고 덩어리가 되어 다시 조밀하게 파여 들어간다. 유화물감이 아닌 소프트 파스텔로 형태를 잡고 수정 시에는 정착액을 뿌리고 다시 형태는 잡혀간다. 순식간에 잡힐 것 같지만 가루로 선으로 면이 되어 나타나는 덩어리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밀하다.
작가가 말하는 익명이란 욕망을 전제로 하며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나무와 인간 아니면 자연과 인간을 유한한 생명체로 놓고 본다면 시공간 안에서 이렇다 할 사건이 단번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영원한 화두로서 철학적 사고로 늘 있어 왔고 혼자가 아닌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존재로 여기면 형이상학적 면에서 단순 하지만 난해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작가와 만난 숲은 과학이 발전하고 더 이상 원근법에 메이지 않게 된 현대회화의 조형처럼 무한하다. 그 자신도 포함시키고 타인도 늘 고정시키는 것이 아닌 새로운 존재로 조명될 수 있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의 현존재란 (다자인 Dasein)이란 이러한 거대함으로 연결되는 관계 형성으로 추상적이고 동시에 사실적이다. 영원한 화두로 일상은 평범함 속에서 찾는 진리이다. 태곳적부터 있어왔을 자연과 인간의 관계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늘 곁에 있어 미처 생각하지 못해 왔던 존재들처럼 망각되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연속적인 속성으로 나무, 숲은 탄생되었고 인간도 그러하다. 나무들은 편안하고 낯설지 않지만 현대인의 모습처럼 무장됨이 있다. 아름다움 보다 알 수 없는 경향으로 무질서하다가 다시 질서가 정립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익명의 숲이 된다. 편안한 쉼터라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장으로 눈에 두드러진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들은 철학적 언설을 대신한 자기 성찰의 결과라 볼 수도 있겠다.
 
작업노트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쌓이는 마음의 불순물과 소음들이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숨을 몇 번 크게 쉬는 것만으로 사그라졌던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 그림은 평면과 환영의 세계 어디쯤에서 유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초기에는 사진을 보고 전체적인 구도와 색조를 만들고 점차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렇게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추상과 외형적으로 닮았습니다. 나무, 돌, 계곡의 물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기까지 형과 색의 조합이 생겼다가 덮여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때로는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때로는 어느 시점에서 한동안 멈추어 제가 그려놓은 것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 시기에는 그림과 대화하듯 힘겨루기를 하는데, 자유로운 선들과 직관적으로 쓰인 색들은 점차 구체적 형상이라는 친숙하고 안온한 세계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그러나 완성되고 나면 사라질 순간의 조합들을 통해 구도, 색감의 배치, 획을 긋는 모양과 속도감, 겹친 정도 등 수많은 그림의 요소와 변수들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조형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 또한 작업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둠 속을 산책할 때의 두려움과 낯선 세계로 발을 디딜 때의 설레는 감정을 오가며 지나온 시간이 다음 작업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경희 Kyounghee Noh

2010-2012 M.F.A Slade School of Fine Arts, UCL, London, UK
2001-200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개인전
2019 익명의 숲, 도올 갤러리, 서울
2014 Omnipresent, 갤러리 버튼, 서울
鬱林_울림, 63 스카이아트 갤러리, 서울
2008 Silent Landscape, 갤러리 영, 서울

단체전
2018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코엑스, 서울
유니온 아트페어, 에스팩토리, 서울
풍경연구, 아트팩토리, 서울
Peaceful Garden, 필갤러리, 서울
2016 부산한 전시, 미부아트센터, 부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코엑스, 서울
2015 Pilot hole, 복림빌딩, 서울
그림, 숲을 거닐다, 아침고요갤러리, 아침고요 수목원 x 오픈갤러리, 가평
로데오 옥션, 플랫폼, 서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코엑스, 서울
2013 Elements, ArtEco Gallery (현 Kristin Hjellegjerde gallery), London, UK
2012 Rising Stars, Coombe Gallery, Dartmouth, UK
Jerwood Drawing Prize, Jerwood space, London, UK
Slade Degree Show, Woburn Research Centre, London, UK
The 5th4482[Sasapari]: Map the Korea, Barge house, London, UK
2011 Slade Interim Show, Slade Woburn Research Centre, London, UK
2010 Between the acts, 한전 프라자 갤러, 서울
2009 후지와라 요지로의 아시안 희망 프로젝트, 금산갤러리, 헤이리
Korean Galleries Art Fair, 부산 벡스코, 부산
Asian Young Artists, 도쿄 금산 갤러리, 도쿄, 일본
2008 현실과 환상의 경계, 강남구청 복도 안의 미술관, 서울
2004 제 24회 한국현대판화전,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