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 정 개인전

산을 들어 올리는 실 (A Thread lifting a mountain)

2020. 09. 02 - 09. 13


 

 

이유정은 민담, 소설, 영화 등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 가져온 모티프에 개인적인 경험을 포함한 장면 구성으로 서술적 회화를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회화의 이야기 구조를 이어가면서도, 자수의 장식성보다는 바느질이라는 오래되고 끈질긴 기술의 야생적 힘에 이끌리고 고무되어 자수의 풍부한 표현 가능성을 탐구한 신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유정 작가의 설명

바느질은 일상 속 개인의 촉각 경험이 자연스럽게 재료의 근거로 옮겨지는 내밀한 작업방식이다. 텅 빈 화면 앞에 절대 주인으로서 통제하는 회화와는 다르게 바느질을 할 때에는 불가피한 조건으로 인하여 걸러진 요소들을 더 존중하게 된다. 

초기에는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재료에 자투리 천을 감침질하는 아플리케 기법으로 시작하였다. 이를 발전시켜 기존 회화의 서술 구조를 잇는 평면적인 자수회화와 전통 조각보를 응용한 조각으로 양분하여 확장시켰다. 자수 작업은 세부 묘사에 공들인 도상적 풍경으로, 입체 작업은 지형의 구조를 가진 추상 조각으로 변모하고 있다.

 

1. 자수 

기존 유화 작업이었더라면 붓질을 얇고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두텁고 딱딱한 기름 층이 되었을 그림의 표면이 자수 작업에서는 병렬의 촘촘한 땀으로 펼쳐 늘어선다. 붓질의 스트로크에 대응하는 바느질 단위인 땀(스티치) 하나는 붓이나 연필의 한 획과 다르게 농담 조절이 불가능하다. 기름이나 물 같은 매개체가 없기 때문에 풍부한 그러데이션이나 용매의 우연적 뉘앙스를 주려면 섬유 조직의 성격과 올을 헤아리고 여러 차례로 단계를 나누어 실을 심어 넣어야 한다. 

자수는 어느 장르보다도 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고 그런 이유로 표현의 한계 안에서 자유롭다. 그렇게 포기되는 요소들 덕분에 중요한 요소들을 찾아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붉은 치마>와 <분홍 치마>는 모두 시선의 폭력성과의 투쟁을 다룬다. 붉은색을 비롯해 여성취향이라고 치부되는 화사한 색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모순적 상황에 주목하여 붉은색에 대한 죄책감과 싸우는 머릿속 전쟁터를 명랑하게 구성하였다.

정선이 그린 이백의 시, <소년행>으로부터 출발했던 과거 회화작업의 연장으로서 말을 타고 꽃을 밟으며 새로운 술집 여인을 만나러 가느라 설레는 풋풋한 소년의 봄나들이 장면을 집어넣어 여성을 소외시킨 채로 욕망을 낭만화하는, 면면이 이어져온 오랜 전통도 함께 말하고자 했다. 

<산을 들어올리는 실 - 푸른 인어(멜뤼진)와 상사뱀 > 

꽁꽁 엉킨 실타래를 끊어내지 않고 풀어본 사람이라면 조급한 마음으로 세차게 실을 잡아당기는 것이 실타래를 푸는 가장 나쁜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일을 그렇게 몰아간 급박함과 그것을 풀어야 하는 절박함이야말로 해결을 악화시키는 주범인 것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쯤이야 싹둑 끊어버리고 말 일이지만 세상의 일이란 그렇지 않다. 자발적인 어떤 외톨이라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뿐 넓고 촘촘한 우주적 조직 속에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산을 들어올리는 실>은 그렇게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의 위기로부터 탈출하려는 마음의 도상이다. 원인이 단순히 하나인 법이 없는 착잡한 근심 덩어리를 어두운 창공과 컴컴한 심해에 띄우고 방해물 사이를 더듬어 해쳐나가는 역정을 장엄하게 수놓고 싶었다.

  

2. 바느질 조각

기하학적 패턴의 정교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서양 퀼트와 다르게 여분의 양적 한계와 불규칙성을 허용한 전통 조각보에 더 매료되었다. 오리고 남은 자투리 천의 유기적 윤곽을 그대로 이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축소하고 우연한 형태를 수용하여 키워나간 비정형의 걸개 조각보인 셈이다. 상이한 섬유들을 맞대면서 생긴 신축성의 차이로 평평하던 구조는 자연스럽게 굽고 솟아올라 지형처럼 울퉁불퉁한 부조가 되는데 이 격차를 더 과감히 유도하면 형태가 비약적으로 뒤틀리면서 입체로 변모한다. 

매달린 부조 연작은 독신자의 창문을 가리는 커튼이다. 커튼 대신 창문을 가리기 위해 포장지와 한지를 꿰매 임시로 만들어 쓰던 소박한 조각보가 밖에서는 다채롭게 보인다는 흥미로운 반응으로부터 착안했다. 빛을 투과하는 조각보 커튼은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효과를 준다. 광원에 따라 밤에는 밖에서, 낮에는 안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드러낸다는 유동적 변모의 특성과 눈에 띄지 않게 감추려고 가린 것이 더 눈에 띄게 되었던 결과에 주목했다. 빛을 사이에 두고 공간의 외부와 내부의 시선 격차를 의식하게 되면서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보의 구조를 접목시켜보려던 오래된 계획을 바느질 작업을 계기로 실현한 것이다. 

<굴을 팠는데 잘 된 것 같다>와 <촘촘한 성>1, 2는 카프카의 소설 <굴>에서 영감을 받고 제목도 빌려왔다. 버려지는 자투리천들을 모아 가장자리의 여분이 서로 들어맞거나 재질과 색상이 어울리는 조각들을 퍼즐처럼 짜 맞춰 펼쳐나간 작업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나날 속에서 나름의 엄격한 규칙 아래 부분적으로 완결 지어가며 성을 쌓듯이 만들었다.

<행복한 제비>는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 시작된 주제이다. 불행한 왕자의 메신저로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을 제비를 기린다. 제비가 왕자와 세상을 오가며 물어 나른 행위, 그가 전달한 물질과 의미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이 유 정 LEE Yujeong

2005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석사 (Maîtrise en Art plastique à l'Université Paris 8) 

2004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학사 (Licence en Art plastique à l'Université Paris 8) 

1995 한국 무대미술 아카데미 수료

1994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5 <믿을 수 없는 화자> 갤러리도스, 서울 

2007 <꾸며낸 이야기>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6 <멜랑콜리>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1 <이유정 개인전>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1999 <이유정 개인전> 관훈갤러리, 서울

  

단체전

2017 <Paris Artistes# 2017> www.parisartistes.com

Bastille Design Center, Paris/ Espaces Leon Blum, Paris

2015 <가정의 신화> 아트파크, 서울

2010 <왕릉의 전설> 아람미술관, 고양

2009 <식사의 의미, 여덟 가지 이야기> 아람미술관, 고양

2009 <Love & Sweet>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

2008 <Candy> 한향림 갤러리, 파주

2007 <Sweet> 아트파크, 서울

2007 <그림의 떡>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7 <미술관은 놀이터>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2007 <도로시의 빨간구두> 인사아트센터, 서울 

2006 <화가가 만든 책>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2004 <서늘한 미인> 노암갤러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