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희 개인전

자연의 해석 - 생성과 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 - Creation.Extinction) 2018. 7. 4 - 7. 22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타나는 형태들로 들판 위에 나무와 하늘이 있고 꽃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풍경화로 볼 수도 있겠으나 희뿌연 색채로 뒤덮여 대부분의 것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물의 외각을 처리하기보다 안갯속에 가려진 듯한 모습으로 대상에 정서적 분위기를 찾는데 초점을 둔다. 작가가 늘 그려온 꽃을 보더라도 꽃잎보다 그 안에 암술머리가 부각되어 꽃방의 모습은 다각도로 변모해 왔다. 꽃의 외각 그리고 캔버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양상으로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공간으로 안착되어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기억 안 풍경이라면 수평선을 중심으로 멀리 있는 물체는 흐려지고 가까운 물체일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상대적 거리감이 공간 안에 질서 정연함으로 자리하지만 이 작품들은 무엇인가 결여된 조형성을 띤다. 한마디로 길가의 들어선 나무들로 연상되는 호메바의 작품과 다른 성격이다. 작가는 늘 풍경의 범주로 사실적이나 동시에 추상적인 형태를 선보여 왔다. 최근 들어 밖의 풍경이 아닌 실내의 공간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안과 밖 캔버스의 경계는 모호하다. 어느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작품에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모습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공통적 요소라면 자연의 범주로 볼 수 있는 관찰보다 연상되는 소재로 나무나 꽃이 보이지만 사물의 구체적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추상적이고 짙은 원색의 컬러가 있지만 입자가 모인 것처럼 표현되어 그냥 희뿌연 색감이 아닌 빛으로 마무리된 것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관찰로 얻어낸 재현이 아니라 했다. 기억 안의 상황을 현시점에서 끄집어내고 캔버스로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여성 작가로 결혼과 함께 출산의 고통을 기억하고 매 상황으로 표현하는데 작품들은 소재로서 자연을 그리고 있으나 직접적 묘사 아닌 인식이 결여된 상태로서 어느 날 문득 떠올리는 의식의 흐름 같은 결과물이다. 안과 밖의 풍경 묘사 그리고 조금씩 변화해온 꽃은 라캉의 맹목적 대상으로 작용되다가도 동시에 맹목적 욕망의 꽃이 아닌 사르트르의 존재물로 변화한다.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시켜 작품을 그리고 있지 않기에 자연이 있으나 해석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자신을 주체로 은유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작품으로 이어져 구체적인데 추상적이다. 성장한 아이들을 볼 때 오랜 시간 지남으로 출산의 고통은 흐려졌지만 가족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매 순간 달라진다 말한 바 있는 작가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영원할 수 없는 순간의 감정임을 말해준다. 어떤 것이 부족함을 느끼고 충족됨은 거창하게 설명하면 문화코드와 함께 사회가 지속되는 원동력인 라캉의 욕망적 대상이나 개인의 시점에서 욕망은 매 순간을 채우는 만족됨의 연속이다. 사소하고도 무거운 결정의 순간을 지나 반성함은 베르그송이 말한 물질과 기억으로 일상이다. 생명이 있는 한 결핍됨을 충족시켜 만족하려는 행위의 인간이 포함된 자연은 다 확인되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 확인되려는 진행형이다. 종교가 모든 것들을 대변해 주던 시기를 지나 과학이 모든 것을 밝혀내고 결론 내리기 위한 방법은 모색된다. 개인의 삶과 연결된 사물들도 변화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이제 더 이상 사물의 본질은 없으며 복제만 있을 뿐이다 말한 보드리야르의 시물라시옹Simulation 이다. 그리드 위로 건물이 올라가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가 반복되는 어느 한편에 개인은 저마다의 역할로서 분주히 살아간다. 하나의 역할이 아닌 누구의 가족으로 어떤 단체의 일환으로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또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를 이루며 그 안에 개인과 다른이 간에 경쟁으로 살아가는 현시점, 경험과 기억의 교차지점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그림들은 이 범주 내에 있으며 결핍과 충족의 대상으로 거대한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으로 세상이고 욕망은 지속된다. 현실이 교차되기에 정서는 늘 변화하고 작가는 그걸 표현한다. 잘 정돈된 사실적 풍경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재현으로 자연은 칸트의 정언명령 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고 부정보다 긍정적인 니체의 초인 Ubermensch 으로 극복됨이 있다. 때문에 꽃의 형태는 긍정과 부정을 오가며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는 듯한 은밀한 내부 묘사는 우울함도 기쁨도 잘 보여주지 주지 않는다. 한발 물러나 관조적 시선에서 자연은 해석되고 있다.

  

 

이금희 李金姬 Lee Kumhee

파리 1대학 소르본느 조형예술학 박사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 

Long Island University 대학원 졸업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및 석사

  

개인전 24회

2010 부산비엔날레 한·중·일 지금의 작가전(부산문화회관 전시실, 부산)

18회 丹南(Tannan)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전, TAKEFU전, MAIDURU전(일본)  

Europe and Asia Today(Art Cente Berlin, Berlin)

Toyama International Art Exhibition(Toyama, 일본)외 다수

7회 스위스 제네바 국제아트페어(Geneva Pale Expo, Switzerland)

Art Forum 39 International 한중 교류전(세종문화회관 본관, 서울)

제22회 현대미술 국제교류전(Ward-Nasse Galerie, New York)

Salon 2005 de la Société Nationale Des Beaux Arts(Carrousel Du Louvre, Paris)

L'exposition collective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Paris)

Centenary Exposition of Salon D'automne (Espace Auteuil, Paris) 

Europe and Asia Today(Art Cente Berlin, Berlin)외 150여회 단체전

  

주요논문


원시적 생명력의 상징적 표현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 논문

Inner Space in Human Nature, Artist Statement in Long Island University

회화공간에 있어서 시지각과 신체, 박사학위 논문

파리 1대학 소르본느 조형예술학학위 논문 

La nature fait renaitre l'objet Résultat d’une réflexion Sur les matériaux souples et/ou réversibles Et sur les nouvelles caractéristiques de leur espace, 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 U.F.R. 04. ARTS PLAST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