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원 개인전 '연 우 (煙 雨) – Pluie de Brouillard' 2016. 2. 17-2. 28











이번 작업의 대 테마는 '연우(煙雨)', ‘안개비’이다.
은근하고 비밀스럽게 내려와 내 가슴을 적시는 ‘안개비’.
내리는 듯 마는 듯, 그 존재감이 미비하게 느껴지지만 한 번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나서는 그 존재 전체를 뒤흔들고 가슴 깊이 각인되어 영원히 머문다.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비’의 의미를 지닌 ‘연우’(煙雨)는 나에게 ‘인생의 비밀’, ‘자연의 신비’ 그리고 ‘자연의 무한한 사랑’의 형상화된 모습이자 징표로 다가오고, 은은한 사랑으로 적시는 그의 존재는 아득한 안개에 쌓여 은근하고 은밀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
한낮 티끌에 불과한 우리는 안개에 쌓인 듯 신비와 불확실성에 휩싸인 미지의 세계 속에서, 때로는 당혹스러움 또는 경이로움으로 방황하며 살다가 시간이 흘러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스스로 소멸되어 다시 대자연,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어찌 보면 우리 개개인의 존재감은 극히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어떤 미비해 보이는 것도 대자연의 무한한 사랑의 손길을 받고 있기에 모두 다 고귀하다.
연우가 그 어느 후미진 곳도 예외 없이 축복의 비로 적셔주듯이.
예로부터 비단과 무명 그리고 모시는 한국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섬세하고 화려한, 무엇보다 가장 친근한 재료이다.
어린 나이의 소녀는 글을 배우는 대신 바느질을 배우고 이불, 베갯잇, 치마저고리 등 본인의 혼수품을 직접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결혼 후에는 평생 그녀의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여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표현매체인 바느질.
침묵 너머 형언할 수 없는 여인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바느질은 기쁨, 슬픔, 고통, 외로움 그리고 한(恨)이 서려 있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언어이자 진실 된 고백이다.
비단(silk), 모시와 무명 색실의 궁합은 내가 연주하고픈 ‘사랑의 랩소디’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 다가온다. 화려한 비단 위를 누비는 오색찬란한 색실들과 사각형 꼴의 작은 파편들 - 소우주적 시각에서 보면 세포의 작은 입자 또는 대우주적 시각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작은 색유리 조각 또는 조각보의 천쪼가리 - 은 각자 고유의 길을 가다가 서로 만나고, 중첩되고 뒤엉키면서 그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은 모두 모여,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웅장한 한 편의 드라마를 펼쳐낸다.
내 작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사각형(또는 직사각형) 조각들은 마치 드넓은 하늘을 수놓는 별과 같이 우주를 떠도는 영혼의 흔적들이다.
오색찬란한 비단 천위를 누비는 색실들의 향연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가사 일에 충실한 한 이름 없는 여인의 고결하고 처절한 흔적이자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고백의 흔적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실과 실크 천이 만나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듯이, 미비해 보이는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발자취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얽혀 화려하고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그녀에게 시련, 고통 그리고 기쁨은 중간 중간 일어나는 실의 엉킴과 충돌 그리고 폭발 등의 형태로 드러나고, 이 미비한 극적인 사건들은 오히려 전체적인 아름다운 화면 연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전환점 또는 정점으로 제 자리를 굳건히 한다.
이같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길에 충실한 수많은 실들과 천 조각들의 이야기는 그 나름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갖는다.
묵묵히 가정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와 같이.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1934- ) 선생님의 말씀대로, 여성이 다루는 “실과 바늘은 갈등을 봉합하는 힘”을 갖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파괴하는 힘을 가진 ‘칼’과 ‘폭력’의 힘이 막강해 보이지만, 진정한 힘은 포용, 봉합, 소통 그리고 흩어진 것들 간의 조화를 꾀하는 ‘바늘과 실’에 있다.
한때 ‘쓸모없이’ 버려졌던 천쪼가리들이 모여 ‘쓸모 있는’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듯이,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바늘문화는 21 세기에 꽃필 것”이라는 선생님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고 반가운 마음 가득이다.
21 세기의 문화코드는 칼의 ‘폭력’이 아닌 바늘의 ‘포용’에 있다.
서양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20 세기 현대미술은 기존의 것을 파괴해나가는 ‘새로운 조형적 폭력 시위’의 연속이었고, 우리는 서양의 것이 선진국의 산물이라는 뿌리 깊은 열등감으로, ‘우리의 언어’, ‘우리의 옷’이 아닌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 이를 흉내 내면서 그것이 마치 세련되고 앞서가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를 무조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6.25사변 이후 거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는 척박한 상황인 우리나라의 현실적 조건은 우선 서양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황무지를 개척하여 길을 닦아놓은 선조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였다.
오늘날 서양인들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폭력’이 아닌 ‘철학’임을,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정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동양의 깊은 철학정신이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는 ‘폭력, 분열과 소음’이 아닌 ‘사랑, 통합과 침묵’이 21 세기를 위한 예술의 답이라고 확신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tch Dostoevski, 1821-1881)의 주장대로 “아름다움만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말에 이의가 없다면 말이다.
모든 것을 감싸고 흐트러진 것을 한데 모으는 천 그리고 흩어진 것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바늘과 실의 위력은 진정 위대하다.
이는 늦은 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미한 호롱불 아래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는 어머니, 묵묵히 뒤에서 가족을 보살피는 여인의 힘이다.
요란하게 떠벌리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는 사랑의 힘이다.
-작업노트-

 

박혜원 朴惠苑 Park Haewon Sophie
브뤼셀 리브르 대학교 서양미술사 전공, 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Histoire de l'art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 판화과 졸업, Académie Royale des Beaux-Arts de Bruxelles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판화과 졸업

경력
1991노르웨이 트리에날레 판화 콩쿠르
International Print Exhibition Miniature 6 Triennale Galleri Gamlebyen Frederikstad, Norway
1991바르셀로나 국제 미술학교 비엔날레
Biennale des Ecoles d'Arts, Barcelona, Spain
1992제 7 회 공간 주최 판화 공모전
The 7th Grand Prize of SPACE International Miniature Print Exhibition, Seoul, Korea
제 12 회 스페인 카다케즈 국제 미니프린트 비엔날레
Mini Print International Taller Galleria Fort Adogi, Spain
룩셈부르크 유럽 미술대학 살롱전
Salon d’Etudiants de Luxembourg
1993제 2 회 고찌 국제 트리에날레 판화 콩쿠르
The 2nd Kochi International Triennale Exhibition of Prints, Japan
프랑스 쌩-로랑 뒤 뽀르 문화회관 장서표 전시회
Exposition d’Ex-libris, Centre Culturel de St. Laurent du Port, France
벨기에 마르셍 판화 콩쿠르 입상
Concours de Gravure d’Images Imprimées, Vyles d’Art Marchin, Belgium
1994브뤼셀 쌩 질르 구청 주최 “벨기에 대표 판화가 12인 특별전”
Parcours d’Artistes, St.Gilles de Bruxelles, “Exposition de 12 Graveurs représentatifs en Belgique
브뤼셀 디멜스 화랑 주최 “판화가 4인 초대전”(6.15∼7.16)
Exposition à la Galerie Dimmers, Pl. Brugmann 8, Bruxelles
초대작가 : 로저 드윈트(Roger Dewint;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판화과 교수), 피터 포쉬(Peter P?s; 체코 미술학교 석판화 교수), 끼끼 크레브쾨르(Kiki Crèvecoeur;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판화과 조교수), 박혜원 소피(Park H.W. Sophie;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 94년 수석 졸업자)
1996제 4 회 형상의 파장전 ‘인간, 자연전’, 운형궁미술관
프랑스 낭뜨 왕립 미술학교 전시회
Exposition à l’Académie Royale des Beaux Arts de Nantes, France
갤러리 도올 주최 ‘96년 현대 여류작가 초대전’
1997-09제 25 회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 회원전,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실
1998제 3 회 월인 MINI 프린트전, 종로갤러리
2000-02홍익판화가협회전, 갤러리 상(관훈미술관 등)
제 4 회 현대판화의 조명전, 갤러리 도올 기획전
2001제 7 회 한, 일 대학교 판화 교류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한국 젊은 판화작가 전시회, 르로이 네이만 아트 갤러리,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Le Roy Neiman Art Gallery, Columbia University, U.S.A.
2002제 12 회 공간 국제 판화 비엔날레 입선
서울 가톨릭 청년작가 9 인전, 중림동 가톨릭화랑
2007서울미술대전 “판화” 부문 선정 작가, 서울시립미술관(6.8 - 7.1)
2008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전 “복제시대의 미학-EDITION“, 전남도립미술관
2015뉴욕 조지 빌리스 갤러리(Georges Billis Gallery, N.Y), 아트부산(ART BUSAN), 6.3∼6.8

개 인 전
1996제 1 회 한솔갤러리 초대전 ‘Royal Meditation’, 인사동
1997제 2 회 ‘ICON 드로잉 개인전’, 조형갤러리, 인사동
‘박혜원 초대 개인전’, 갤러리 프란스.인, 강화도
1999제 3 회 심우(尋牛) 개인전, 관훈갤러리, 인사동
2002 “Via Dolorosa” (11.2 ~ 15), 갤러리 도올 기획전, 삼청동
2005‘뿔(the Cone) 전’ - 개인전, 노암 갤러리(3.9 ~20), 인사동
2006‘Natura 전’ - 개인전, 인사아트센터(6.28-7.4), 인사동
2008‘천창(天窓)’전 – 토포하우스 기획전, 인사동
2009‘천창-풍경’전 – 갤러리 도올 기획전, 삼청동
2016‘연우(煙雨)’전 - 갤러리 도올 기획전, 삼청동

기 타 경 력
1995-95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 국빈 동시통역 4 회
2003. 10∼2004. 4케이블 T.V. 평화방송 미술교육 프로그램 : 서양미술사 소개
“함께 보는 교회미술” (15분, 주 3회) : 구성, 원고, 진행

작품소장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 ‘세상의 종말’, 대전 대흥동 주교좌 성당

저서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2010)
<그림 속 음악산책>(2010, 문화관광부 선정 올해의 우수교양도서)
전 : 인천가톨릭대학교, 한양여대, 상명대, 강원대, 서강대 문화대학, 하비에르 국제학교, 가 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및 생명대학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교육프로그램, 예수회 센터
현 :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