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The scene" 2013. 3. 6 - 3. 17

 

1. 첫 번째 시선 ‘존재와 부재’
존재와 부재는 20세기 이후 모든 예술 장르에서 중요한 화두로 꼽힌다. 특히 그것은 세기말 혹은 전후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의 예술에서 더욱 진보적으로 드러나며 ‘실존’을 묻는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심도를 갖는다. 일예로 작은 캔버스 다섯 개를 이어 붙인 그의 작품 <sorry>와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은 인간 존재가 그 존재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만약 존재가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관계의 지속성은 유효한지에 대해 공통되게 묻는다. 마치 사마라구(Jose Saramago)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처럼, 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자'와 '존재'에 관한 심도 있는 철학적 물음을 담고 있다.
녹색 고름으로 뒤덮인 봄비 작가의 연작 중 하나인 <Couldn’t be there#2>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아래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탐구 및 비극성을 여러 사건을 통해 전개한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은 수월한 탐독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자문을 고찰토록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띤다. 샤넬 백을 옆에 두고 힘없어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는 장면을 담은 <Waiting>은 인간 존재와 부재에 관한 기의를 현재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작품 <Gift can kill you>는 사람 사이의 소통의 상황, 우리들 내면의 드러남과 감춰진 무의식적 고독함과 공허함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이들 작품은 일부에서 부재한 것을 욕망하며 욕망의 대상이 소유 불가능한 것일수록 방황하게 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연상시킨다.
근작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은 남녀의 키스장면이 인상적인 <Never the less>이다. 남녀의 교합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이 그림은 분명 외피적 달콤함이 묻어나고 희망을 담보하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불안의 엄습이 자릴 잡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흡사 코코슈카의 <폭풍>과 클림트의 <키스>를 하나의 장에서 연계시킨 것처럼 환희와 지나갈(혹은 지나간) 번민의 순환적 고리를 드러낸다. 이를 확장된 개념인 인간 존재의 불안으로 치환한다면 이 그림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물음표, 각기 다른 시공이 멈춰선 한 무대에서 남녀의 상치된 전개를 통한 고독과 외로움, 작가의 전후적 감정을 읽히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인간자체에 대한 흔적 내지는 고독한 존재와 실종된 기억, 내면의 부재를 찾지 않는다면 올바른 해석이라 말하기 힘들다. 또한 비록 그 대안 없는 끝에 남는 건 결국 오늘이라는 시점의 불변함, 일종의 공허일 지라도 최소한 의식에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엿보지 못함은 정확한 분석이랄 수 없다. 다만 그의 그림이 이해의 수월함을 선사하는 건 아니다. 기호와 상징적 코드는 상상력과 스토리를 낳지만 쉬운 지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선글라스와 붉은 색 옷을 걸친 <with red tree>처럼 봄비의 작품들이 초현실주의(Surrealism) 맥락으로 이어지며 무의식적 침잠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전제와 몇몇의 일정한 규칙(기호, 색깔, 형상 등등)을 생각한다면 그의 그림들이 단순한 생태성을 넘어 본질에 관한 질의를 유효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봄비의 조형언어엔 공간성과 시간성이 배어 있다. 해독의 어미는 기호이다. 일단 '공간'은 장소성이 지닌 유무형의 기억을 관통하고 재구성하며 공간자체의 특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실외가 많은 것이 그 증거이다.) 작화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시공은 사진을 통한 재구성이다. 작가의 조율에 의한 공간의 재조립은 근본적으로 재배열과 재해석을 통해 이뤄지고,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하나의 화면에 놓이면서 그 표면에 기표들을 얹힌다. 인물과 풍경, 도시적인 이미지들을 회화적 콜라주로 덧입히고 그 위에 메시지를 얹는다. 이러한 조형방식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일체를 형성하는 형국으로 전개되고 타자들에게 익숙하지만 또 다른 층위의 감성을 제공하도록 한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나와 다른 타자이자 나 자신이며, 건축물, 공원의 나무들, 시티타운의 한 장면 등은 대상 확대의 시발점이자 작가 자신에게만 있는 기억의 회로를 탐미하는 촉발로 기능한다. 당연히 심행의 구동체(驅動體) 역할도 한다. 이것은 의미론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탈현실이라는 두 차원을 연결 짓는 실질적 고리이며, 시공의 배열에 따른 '차이'의 증좌이기도 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현재와 과거를 덮는 자아적 그리드(grid)와 같다.
흥미로운 부분은 기호로써, 그의 그림엔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필적 기호들이 가득 숨어 있다. 그 기호는 구체적으로 현실에 대한 기존 관념의 탈출이자 욕구에 관한 일기이며, 동시에 존재성에 관한 자문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식 가능한 형상을 지닌 그의 그림 속 장면들과 <NO ENTRY>, <Suicide society>, <Gift>와 같은 그림에서 목도 가능하다.
봄비의 작업은 언뜻 오로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내부엔 나를 중심으로 한 시간이라는 줄기에 매달린 관념성과 물리성이 놓여 있고, 존재와 부재의 차이, 의미와 무의미 등이 이입되어 있다. 사진을 이용한 작업, 자연과 도시환경의 오버랩, 서로 다른 층위의 화면 분할과 묘사, 시간의 흐름과 정지성 및 어떤 지시성을 지닌 다양한 상징적 기호들에서 그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일정한 간극 아래 부유하는 '존재증명'과 '부재증명'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삶의 다른 말이다.

2. 두 번째 시선 ‘삶과 시선’
두 번째 시선. 이번엔 다른 각도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자. 미술사적 맥락에서 가장 생명력이 긴 담론을 꼽으라면 바로 의식(consciousness)과 무의식(unconsciously)에 대한 미적 고찰이다. 언제나 미완전한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철학적 사고인 이것은, 비결정적이고 유동적이며 정신적 현상으로 정의될 뿐만 아니라 우리식으론 유보(留保)의 관념이며 개념상 가감(加減)의 보류(保留)를 의미하기에 근대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음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선 작가 봄비의 작품들 역시 같은 궤를 그린다. 그의 회화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삶과 지근거리에 있는 대상을 근거로 삼거나 나 스스로가 무대의 주인공처럼 들어선다. 앞서도 언급한 2011년 작품 <sorry>와 같은 작품마냥 알레고리적인 작업, 나아가 오늘날 그의 리얼리티한 작품 다수를 구성하는 구상성은 보편적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생산하는 기제가 된다. 이중 구상경향의 작품들은 형식상 다분히 인위적이며 초현실주의적이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의식과 무의식 미가 합일(合一)이라는 표상 아래 보편성을 획득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현실과 탈현실,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 누구에겐 지독하기만 한 삶. 살며 살아가는 짧고도 긴 여정 속에서 인간이 겪는 하나하나의 사건에 관한 편리(片利)와 내적 욕망 등이 형상의 거푸집에서 지시도안마냥 존재하는 그의 그림은 대개 자신을 화두로 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풍경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감상적 관점에서 그의 그림들을 눈여겨보면, 흡사 무엇을 찾는 것도 아니고 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떠올라 눈을 감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배어 있다. 외로움, 고독, 실연, 번민, 행복, 기쁨, 슬픔, 자아, 사유 등등 유추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락방에 켜켜이 쌓인 오랜 세월의 흔적처럼 녹아 있고 그것이 오늘의 기준에서 희망의 갈구(渴求)라는 메시지로 귀결(歸結)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살펴보자. 그의 그림들은 모래알처럼 세밀한 것들의 정체를 알려주진 않으나 그건 욕망이기도 하고, 작가의 지나온 삶(혹은 현재의 삶)의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와 관념의 소통이기도 하다. 이를 보다 멀리 보자면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산다는 것, 살아가는 것, 살고 있는 것, 살아지는 상황까지 섭렵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타자의 백 마디 기술보다 어쩌면 그가 남긴 두어 줄의 문장이 효과적일 지도 모른다, 즉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도, 누군가의 깊은 우울증 고백후의 자살에도, 돌고 도는 말들이 만들어낸 허상이 거리를 버젓이 누비고 다녀도 우리네 삶은 그렇게 고요하게 흘러간다. 내게 눈부신 거리는 때로는 너무나 낯설고 잔인했으며, 때로는 거리에 동화되고 싶은 욕망에 휘감겼으며 때로는 차라리 누구든 무심히 바라보고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되길 바랐다.”는 서술에 기 언급된 모든 것이 투영되어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작가는 예술을 통해 삶을 되뇌고 일상을 대신하며 그곳을 통해 사유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작거나 큰 화면에 “지독히 잔인하고 언제나 고요한 것”들을 공기(空氣)처럼 빨아들이고 다시 밖으로 내뿜는다. '안'과 '겉'의 문제에서 '안'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 속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을 대리하려 하며, 느낌, 생각, 판단을 통한 감성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려 한다. 이를 쉽게 말하자면 말할 수 없는 애달프고 거친, 그러면서 나지막한 ‘숨’을 쉬고 있다는 표현으로 정리 가능하다.
작가 봄비는 종국에는 무언가에 대한 변화(變化)와 탈바꿈이라는 거친 숨결이 흩뿌려지길 원하듯 그렇게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헌데, 위 모든 것들-사연, 궤적 등-이 비단 특정 개인의 삶에 한정된 내레이션일까.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주관적 범위를 이탈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돕고 감응하도록 이끈다.
마지막으로 관련 사변적 이해에 종속되지 않는 한 그의 그림들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관계성 모색을 넘어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삶이라는 측면과 부합해 내레이션 하는 지점까지 이끄는 건 분명해 보인다. 존재했으나 떠나간 사람들, 어제의 시공과 오늘의 시공 간 간극에 따른 여운을 좆는 부분도 읽혀진다. 그건 마치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고 있음이며, 역설적이게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남는다거나 그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다는 칼릴지브란(Kahlil Gibran)의 언구를 떠올리게 됨은 그의 그림이 지닌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봄비 Bombbi
2005년 동대학원 입학 2006년 수료
1999년 성신여자 대학교 서양화과 입학 2005년 졸업

개인전
2013 초대개인전 ‘The scene’ (갤러리 도올)
2012 ‘Welcome loner’, 운모하 테라스 (갤러리 도스 기획)
2011 ‘Sorry’, 갤러리스카이연

단체전
2012 유기견, 유기묘 프로젝트 ‘기억해주세요 展’
현대백화점 UPLEX 콜라보 ‘담다 展’
다크 나이트 라이즈展, 슈페리어
난치병어린이돕기 창고세일展, 인천아트플랫폼
새싹전 초대작가 갤러리그림안
2011 인천젊은작가프로젝트 (유어인천),인천아트플랫폼
평창올림픽유치기념예술축전초대. 작가상 수상
중국국제아트페어 초대작가전
인사화랑제(신상갤러리)
하얀다락방전. 갤러리스카이연
2010 김윤아,故남지연 2인전 (JS 갤러리)
난우.난원 (인사아트센타)
인사아트페스티발
2005 난원전 (인사아트센타)
마인드스코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