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Lee 'RE:Butbeautiful' 2012. 10. 24 - 11. 11


영롱한 태피스트리

권오섭 (작곡가, 프로듀서)


‘좋은 그림’이란 무엇일까?
경매장에서 비싸게 낙찰된 명작이 좋은 그림일까? 아니면 싸구려지만 오랜 시간 나의 거실에 걸려 있는 저 친근한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과연 ‘좋은 그림’이라는게 있기는 하는걸까?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수십년간 ‘좋은 음악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이 화두가 그리 생경하지 않다.
슬픈 사람에게 기쁨을, 기쁜 사람에겐 더 큰 기쁨을,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무료한 사람에게 흥미진진함을 주는 그런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닐까?
베토벤 심포니를 좋아하는 사람도 어느 순간 이미자의 트로트에 감탄하고 헤비메탈 매니아도 모리꼬네의 서정적인 영화음악에 눈물을 흘릴 수 있듯이 좋은 그림도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나 스스로 그런 경험을 2009년 도쿄의 한 갤러리에서 하게 된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에 가깝지만 내 평생 나에게 ‘좋은 그림’이란 ‘아름다운 구상(具象)’이었다. 추상(抽象)작품은 왠지 난해하고 작위적이며 요란한 ‘꿈보다 해몽’ 이라고 치부해왔기 때문이다. 도쿄에 잠시 체류하던 중 마침 알고 지내던 한국 출신 화가 마이클 리가 시부야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인터넷으로만 봐 왔던지라 인사도 할 겸 물어물어 갤러리를 찾았다. 한산할 줄 알았던 갤러리는 꽤 많은 일본인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부재중인 마이클을 대신해 큐레이터가 상냥하게 작품설명을 해준 기억이 난다. 추상화 같기도 하고 풍경화 같기도 한 그림들을 한창 감상하던 중 내 눈을 사로잡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미술관에 가면 지나쳤다가 발걸음을 되돌려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그 날 그런 그림을 만난 것이다. 허리를 굽혀 작품태그를 읽어보니 제목은 <Consolation>. 흰색과 붉은색 그리고 푸른색이 빚어낸 울렁임들이 물같기도 하고 불같기도 하며 바람같기도 했다. 일본에 있는 내내, 한국에 돌아와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마이클 리.
청년기와 학창시절을 한국, 일본, 미국, 우간다, 에콰도르, 필리핀, 멕시코 등지에서 보낸 특별한 성장배경과 지구촌 곳곳을 아우르는 범세계적인 인맥 때문에 우린 그를 출생지와 국적을 초월한 ‘세계시민’이라 부르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피에트 몬드리안의 냉정함과 마르크 샤갈의 열정이 단아한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뭔가 서로 모순되지만 미세한 감정과 호흡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리의 추상화들은 사조와 경향을 떠나 제각각이나 모두 하나로 이어진 태피스트리처럼 그의 범상치 않은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듯 하다. 동아프리카 고지 케냐, 그 하늘에 유유히 열리는 새벽이 느껴지고(<Nairobi>) 자그레브의 아름다운 풍광과 굴곡의 역사가 사사로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Croatia>) 키스 자렛의 절제된 솔로 피아노 선율이 맴을 도는 듯 하다(<Be My Love>). <Un Gran Amor>와 위에서 언급한 <Consolation>는 화가가 의도한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작품의 색과 구성이 완벽한 시큐얼을 이루어 마치 아담과 이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다재자능한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이 그가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늦깎이로 데뷔한 만큼 세계 도처에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많은 팬들을 위해 작품활동에 좀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해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공식적으로는 네번째이지만 고국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라 마이클 리의 이번 작품전은 매우 뜻 깊다. 도쿄와 포트랜드에서 그러했듯이 이곳에서도 자유로운 영혼 마이클 리의 영롱한 태피스트리들이 우리에게 세계 시민권을 듬뿍 나누어 주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세계로의 여행

김도혜 (영화 프로듀서)

숯이나 펜으로 쓴 편지든, 이모티콘이 가득한 sms든, 그 기능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매체의 변화에 따라 내용과 표현양식은 달라져왔다. 마티스의 그림이 손 글씨 다정한 연애편지라면, 줄리안 오피 Julian Opie작품은 줄임말에 동영상이 첨부된 요즘 십대들의 통신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옛날의 표현이 정겹고 전달력 있고, 첨단의 방식은 진화된 듯해도 차갑다는 진부한 지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은 진화를 초월하는 본질과 정수의 영역이 아닐까를 생각하고 있다.

수년 전 한 국제영화제를 위해 캐나다 감독 가이 매딘의 특별전을 기획했었다. 그 때 나는 그가, 영화의 본질에 발을 딛고, 최초의 영화 이전에 아무도 못 본 어떤 영화가 있었다면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 같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소개했었다. 예술의 한 장르로 탄생한 영화가 산업이자 재화로 탈바꿈 되는 것에 느꼈던 상실감에 대해 보상과 위로를 주는 작품들이라고.

마이클 리의 작품을 만났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으로 주목 받으려는 강박 없이, 굳은 살 박인 마음에 감동과 기쁨을 되살려내는 창의성과 고유함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그림인데도, 마음 속으로 슥, 들어오는 것. 잃어버린 원형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은둔하여 다른 자극들에 대해 닫혀 있었던 느낌은 아니다. 외로움의 정서가 있긴 하지만 지나치지 않다. 오늘의 우리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어린 왕자 같은 다른 별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추상과 구상의 구분과 경계가 무의미한 상태, 모든 장식과 군더더기를 빼버리고 남아있는 것의 순수함과 천진함. 더 이상 더하거나 옮겨야 할 것이 없는 완벽한 균형. 이것이 그가 제시하는 세계다. 일본과 미국에서 열린 3번의 쇼에서 그는 <butbeautiful 오직, 아름다움>이란 타이틀에 번호와 부제를 붙여왔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회는 지난 5년의 작업을 일별하는 작은 회고전이다.

이 화가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젠체하거나 자신을 치장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계산된 의도 없는 순결한 ‘무’의 상태에서 아름다움의 세계에 연결되어 자신 속의 미의 한 조각을 끄집어 내어 우리의 눈앞에 펼쳐 놓는다. 그것은 따뜻한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니고, 부드러운 것도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친절한 것도 잔인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형용사에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완결된 형태로 제시되어 멈춰있는 것이 아니고, 순간의 전기교류 같은 영혼의 소통을 통해 비로소 새 생명을 얻는, 승화된 세계다. 두 영혼이 이어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지극한 기쁨이다. 바이올린의 현이 몸을 떨어, 인간의 마음에 지극한 슬픔, 고통, 환희의 울림을 전하며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처럼.

그는 딱히 그렇게 보이려는 노력 없이 본질적으로 신비스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끔씩 자신의 조각들을 만날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 매혹을 공유하면서 화가와 관객은 그림을 사이에 두고 신비스러운 교감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이것은 이전에 없었던 커뮤니케이션 툴, 하나의 고유한 랭귀지가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언어에는 단어와 문장을 만드는 문법도 아름다운 문체를 위한 예문도 없다. 꾸밈 없는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형태는, 산이 되고 하늘이 되고 숲이 되고 사막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수 많은 스트로크와 다양한 컬러는, 셀 수 없는 의미로 증식돼 퍼져나가고 파고들어가는 단어이고 몸짓이고 입맞춤이다. 괜찮다, 괜찮다고 쓰다듬어 주는 듯하고, 함께 놀자고 손짓하는 것 같아, 자꾸만 보고 있게 된다. 불가해하고 거대한 유혹이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내가 마이클 리의 아름다움의 세계에 매혹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그것을 다 지워 잊어버리고, 그가 목적지와 여정 없이 초대하는, 느낌과 소통의 여행을 떠나보라. 어쩌면 당신과 나는, <be my love>가 마음을 간질이고 움직여서 우리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의 색깔로, 그 것을 하나의 언어로 이제껏 해 본 적 없는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winter blue>와 <Nairobi winter>의 서늘한 우울함에 공감하고, <consolation>과 <once upon a time>의 따뜻한 안정감을 함께 이야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마이클리(Michael Lee)

1961-1980 멕시코, 우간다, 한국, 일본, 필리핀, 에콰도르, 미국에서 성장
1978-1980 하와이 호놀룰루, Punaho School
1980-1984 미국 펜실베니아, 펜실베니아 대학교 학사, 석사
2006 미국 포틀랜드 오레곤에서 전업 작가로서 활동 시작


개인전
2008 (1회) ‘Butbeautiful I’ - Gallery l’Etoile (도쿄, 일본)
2009 (2회) ‘Butbeautiful II‘ - Gallery Sequel (도쿄, 일본)
2011 (3회) ‘Butbeautiful III’ - Luke’s Art and Frame (포틀랜드, 미국)
2012 (4회) ‘re:butbeautiful’ - Gallery Doll (서울, 한국)

작가 홈페이지 www.butbeautif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