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라 The Way Home 2011. 10. 5 - 2011. 10. 16


시간이 머무는 풍경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기억의 빗장을 열고
신리라의 풍경은 선명하고 조용하다. 도로가에 서 있는 산업문화의 뚜렷한 구조물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들을 담은 채, 마치 영원과도 같은 순간의 표정을 감싸 안고 있다. 작가가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Afternoon's Montage와 Landscape-The way home 시리즈들은 작가의 유년기의 추억에서 되새김질 된 기억들의 확장되고 변형된 풍경들이다. 아버지의 가게에는 색색의 페인트가 놓여져 있고, 빛이 좋은 날에는 넓은 벽체에 페인트가 발리고 황금빛 느긋한 오후의 햇살이 오면 젖은 색들은 그 몸을 온전히 드러낸 채 그들의 존재를 자랑한다.
사실, 작가가 유년기를 보내고 현재에도 지속되는 색들이 이불처럼 펼쳐진 간판가게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인상들은 작가에게 뚜렷하고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이다. 작가의 시선에 부딪힌 벽, 지붕과 같은 일상의 구조물들은 페인트를 칠하는 아버지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초상’을 반복하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듯 화면에 재생된다. 그것은 오래 사색된 풍경이며 작가의 내면의 관조가 머무르는 장소이며, 또한 창조의 시선이 포착한 ‘순간’의 시간이 달라붙어 있는 사물들이기도 하다.
지붕 깊숙하게 그늘을 늘어뜨린 그 시간의 뚜렷한 단상은 선과 면의 구획으로 단순하고 정확하게 구성된다. 그것은 고요하고 서늘한 마치 찰나적인 이미지들인데, 작가는 유년기의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존재했던 가족이 있고 행복하고 안락했던 매혹적인 시간이 존재하는 곳으로의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모색한다. 그 공간은 맑은 영혼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확장되고 증폭된 세계인 것이다. 넓은 지붕과 충분히 높은 언덕, 낮은 지면은 마치 낯선 전봇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먼 대지의 아득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근작에 새롭게 보여주는 가족의 사진을 차용한 작품들에서는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와 공간의 의미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어머니의 결혼사진은 마치 제단위에 올려 진 성스러운 제의로서의 부유하는 시간을 보여주는데, 작가의 휴식과 안락으로의 여행에서 묻어나는 가족으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농도 짖은 노스텔지아를 느끼게 한다. 집이 들어선 마을의 풍경이 유년기를 보여주는 상상력으로 증폭된 세계였다면, 사진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시간의 풍경은 그 집이 꿈꾸는 세계의 형상인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화면에서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의 징후가 포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 태초의 안락을 꿈꾸는 모태귀소본능(母胎歸所本能)으로서의 이 증상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말하는 우리의 상상력의 궁극성으로서, 그것은 어머니의 태반 속에 있을 때와 같은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어떤 공간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에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이 요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의 전 작품들을 관통하는 The way home에서도 보여주듯이, 펼쳐진 풍경과 특정한 가족의 온기가 화석화된 사진의 공간은 그 하나의 온전한 영혼의 공간이며 우주적인 시간과 교감하는 곳으로서, 떠다니는 시간을 포착하고 형상화하는 관조의 시간이 만들어낸 화가의 은밀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순수한 어릴 적 빛과 색이 뚜렷한 시공간으로의 수렴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락과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기억의 빗장을 열고 맞이하는 집이며 가족이고 또한 우리 모두가 잃어버리고 지나온 시간들에 관한 증언들이다. 이는 현대 도시의 물질문화에서 빚어진 불안의 증상에서 벗어나고픈 우리 모두의 그리움이 투영된 곳인지도 모르겠다.

2. 노에마(Noema)-그것은 존재했다.
작가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추출되는 마을과 사진속의 풍경들에는 알 수 없는 힘과 분위기들이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 시간이 멈추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지속적인 시간의 거대한 흐름을 담은 채, 그러나 동시에 부재(不在)하는 텅 빈 시간으로 가득한 것이다. 달라붙어 있지만 비어 있다는 이 모순된 관계의 시간은 작가의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이며 현재로, 미래로 이어지는 숨 쉬는 시간이다.
기억속의 유원지, 휴게소의 풍경은 과거의 잔상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시선에 고유의 의미가 작용하는 현재의 공간이다. 사진 속에 드러나는 숭고한 시간의 한 장면에는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과 긴장들도 간취된다. 이는 곧 시간은 현재라는 지점과 과거와 미래가 함께 겹쳐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세 시간은 멈춰진 듯 계속 살아나는 것으로, 연대기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역설적인 시간으로서 시간의 존재론을 탐색하였던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를 “순수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순수 시간”은 아무것도 담은 것이 없는 듯 무심한 경지의 분위기들이라 할 수 있는데,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시간을 초월하고 문득 깨닫고 바라보는 것으로서 불교적인 경지의 시선과 닮아 있다. 이 “무심(無心)”은 선불교(禪佛敎)에서 말하는 깨달은 경지의 관조로서, 일체의 분별심과 망상을 비운 텅 빈 상태를 말함이다. 이는 곧 찰나가 영원의 시간이며 순간이 오랜 과거와 먼 미래의 궤적을 함축하고 있다는 승화된 시선인 것이다. 이러한 작가가 구현해 내고 있는 안락과 그리움으로 들어가는 여정의 풍경들에서 사진의 직접적인 차용은,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Aura)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아우라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의 마비된 듯한 사건이 존재하는 장소와 인물들이 갖는 독특한 실존의 분위기들인데, 이는 들뢰즈의 “순수 시간”이나 “무심”의 시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진을 보고 그 흔적들을 확대하거나 부분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독창적인 언어인 뽀족한 도구에 의한 상처, 찔린 자국의 외상이라는 푼크툼(Punctum)의 세계가 작가의 화면에서 드러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푼크툼은 사진에서 발견하는 일반적인 조건이 아니라 부분적이며 무의식적인 요소인데, 작가의 시선에 맞닿은 사진 속에서 현재는 부재(不在)하는 어머니로부터 오는 시간과 “노에마(그것이 존재했다)”가 푼크툼으로 작용하고, 작가의 깊이 내려간 삶에 관한 성찰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재로 출발한 성찰은 인간을 둘러싼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의 길항 관계 속에서 대립하는 것들이며, 이것은 담담한 관조의 시선으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꿈꿔온 어느 한 지점의 무심한 풍경은 어머니의 시간일 수도 어머니에게로 향하는 그 안락한 집으로 가는 여정의 단상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현재의 자아가 꿈꾸는 위안이며 치유로서의 휴식인 것이다. 작가는 물질문명과 그 욕망으로 뒤덮힌 세계의 무의미함을 일정한 거리에서 말해주며, 우리에게 시원한 사색과 위안의 공간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 리 라 申 吏 羅 Shin, Ri Ra

2010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2004 국립강릉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1 The Way Home_ 갤러리 도올, 서울
2011 Landscape - The Way Home_ 한전 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2010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윈도우전#65 ‘Afternoon's Montage’_ 갤러리진선, 서울
2009 Afternoon's Montage_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단체전
2011 금호창작스튜디오 기획전시 <The Simple life: Pastoralism>_ 샘표스페이스, 이천
금호창작스튜디오 기획전시, 비평 워크샵 <The Simple life: Persistence>_ 크링, 서울
인사아트센터 기획전 INSA ART FESTIVAL 'ART to DESIGN'_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0 성신여자대학교 개교 45주년 기념전_ 인사아트센터, 서울
The Spectrum of Pure Harmony_ Providence University Art Center, 대만
동방의 요괴들 in the city_ 충무아트홀, 서울
신한 갤러리 기획전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_ 신한 갤러리, 서울
문광부 주최, 목포 자유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풍경전_ 자유시장, 목포
현대미술작가 초대전 '봄봄'_ 강원랜드 특별전시관, 사북
보다-보여지다 신진작가 공모전_ 갤러리 그림손, 서울
2009 BRIDGE PROJECT project 4. Young Korean Artists Group Exhibition_ 창아트, 북경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_ 그랜드 하얏트 호텔, 서울
BRIDGE PROJECT project 3. age of innocence 순수시대_ 워터게이트 갤러리, 서울
ASYAAF - We meet the future_ 옛 기무사령부, 서울
대한민국 예술 대장정 -박수근 미술관에서 이중섭 거리까지_ 박수근 미술관, 양구
2008 홀보드르르 - Soft and Delicate_ 갤러리 인데코, 서울
ASYAAF - When we first met_ 구 서울역사, 서울
2007 점에서 면으로_ 인사아트센터, 서울
익숙한 것의 아름다움_ 관훈갤러리, 서울

레지던시
2009-2011 금호창작스튜디오 5기 입주 작가 선정_ 금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