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원의 한국소나무전 2011.7.6-7.17


지혜로운 노송의 진솔한 속말

신항섭 (미술평론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자연주의 화가들은 이젤과 캔버스를 메고 밖으로 나가 작업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사실주의 화가들은 물론이려니와 인상파 화가들도 태양광 아래서 작업하는 것은 이상으로 여겼다. 태양광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색채이미지를 구사하는데 최적의 조건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는 햇빛 아래에서 캔버스를 펼쳐놓고 그림 그리는 아름다운 정경을 보는 일도 쉽지 않다. 번거로운 현장작업보다는 사진을 찍어 실내에서 작업하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1킬로미터에 달하는 진입로에는 수 백 년생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적어도 10미터는 훌쩍 넘어서는 철갑 소나무들이 도열하며 형성하는 터널은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관이다. 그 소나무 길 옆에 100호 크기의 캔버스를 세워놓고 소나무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밀짚모자를 쓴 화가 김상원 모습은 시계바늘을 과거로 되돌려 놓는다. 그런 모습으로 통도사 경내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100호뿐만 아니라 1,500호의 대작도 어김없이 밖에서 작업한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렇듯이 김상원은 철저히 야외 사생을 고집하는 화가이다. 작품 보관창고는 있어도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는 데서 실외작업에 대한 그의 신념을 읽을 수 있다. 대형 캔버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탑차까지 마련했다는 대목에서는 그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철저한 준비와 노고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작품으로 보상받고 있다. 최근에 아트페어를 통해 각광받게 된 그의 소나무 그림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소나무의 실체에 육박하는 사실성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힘차고 담백하며 진솔하게 느껴지는 그만의 독특한 소나무 그림은 일반성을 벗어난 낯선 조형세계로 인도한다.
그의 소나무 그림은 성글게 보인다. 어딘가 많이 비워낸 듯싶게 시원하게 펼쳐지는 개방감이 돋보인다. 짙푸르고 무성한 솔잎과는 사뭇 다르게 듬성듬성 난 솔잎이 왠지 생경하게 보일 정도이다. 단적으로 말해 수 백 년의 풍상을 겪은 노송의 진면목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햇빛을 따라 이리저리 가지를 뻗다보니 구불구불한 형태가 되었으리라싶은 노송의 자태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의 그림을 통해 새삼 노송이 굴곡 많은 인생에 비유되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데 수긍한다.
소나무는 한국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거용 목재가 모두 소나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실생활과 밀접하다. 뿐만 아니라, 늘 푸른 상록수인데다 그 모양이 자연스러워 예로부터 회화적인 소재는 물론이요, 문인들의 시문으로 수없이 찬미되었다. 어쩌면 그는 이처럼 심미적인 안목에 의해 애호되는 소나무 그림을 탐색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각적인 즐거움과 더불어 오래 두고 보아도 새록새록 새로운 느낌을 주는 그런 소나무 그림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리라.
실제로 그의 소나무 그림은 이전의 화가들 작품과는 다른 시각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아름답다는 개념과는 좀 다른 차원인지 모른다. 아름다움보다는 소나무의 실체를 보다 명석하게 표현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 온갖 풍상을 겪은 수 백 년 노송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듯이 소나무 형상을 통해 감각계를 넘어서는 이미지를 얻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노송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밝혀내는, 그 진실의 표현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기에 되도록 담백하면서도 소탈할뿐더러 명확한 형상에 도달할 수 있는 묘사기법을 강구했다. 더불어 힘찬 생명의 기운을 안으로 다스리는 지혜로운 소나무의 형상을 좇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소나무의 형상은 다름 아닌 실상을 초월하는 사실성, 즉 생명의 본질에 육박하려는 데 있다.
그는 그림이란 짐짓 노력하고 열정을 바친 만큼 보답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인식한다. 직접 보고 느낀 사실만을 그린다는 입장이야말로 자연주의 화가가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관이다. 보고 느낀 사실이란 다름 아닌 미적 감동 또는 미적 감흥을 뜻한다. 이는 생명의 광휘, 즉 자연이 발산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의해 자극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바로 이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생명의 광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연주의 회화는 실제 또는 실체에 대한 진솔한 체험이 관건이다. 미적 감동 및 감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현장작업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공기의 흐름과 같은 미세한 자연의 기운, 즉 생동감이 넘치는 대기의 움직임까지 포착하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에서 피부 속 깊이 파고드는 신선한 숲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작업하는 매 순간 만큼은 자연과 일체가 되어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결과이다.
그의 소나무는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실제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치밀한 사실묘사도 아니다. 단지 무수한 선들이 모여 소나무를 형용하고 전체적인 구도를 지배하는 형국이다. 세필에 의해 실제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극렬한 묘사가 아님에도 사실성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시각적인 체험은 생소한 것이다. 소나무의 외형을 재현하기보다는 사실성을 표현하는데 집중해온 결과이다. 구태여 힘든 현장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의 소나무를 그림으로 옮겨 놓았을 때 눈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생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코로 호흡하고 피부로 감촉하는 자연의 기운이 그대로 캔버스 속에 녹아들기를 기대한다. 눈에 보이는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림 속에서는 허상일 따름이다. 아무리 실제와 또 같이 묘사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시각적으로 이해되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외형묘사에 집착하는데 그친다면 허상을 그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시지각에 의해 분별되는 사실의 영역 그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는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의 여운을 지속시키기 위해 현장작업을 고수한다. 나무들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징은 물론이려니와 거리감, 그리고 미세한 대기의 움직임까지 직접 몸으로 느낌으로써 살아 있는 자연의 실체, 즉 생동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임을 확신한다. 그 자신이 작업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동 및 창작의 희열이 작품 속에 녹아들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 희열에 의해 움직이는 붓 터치는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된다. 붓을 이끌어가는 리듬이란 신체적인 기능의 자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활성화된 생명의 기운에 의해 자율적인 표현이 유도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방식은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단속적인 자잘한 선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소나무의 형상이 맺힌다. 선묘에 의한 형태묘사와는 다른 방식이다. 물론 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묘사에 합당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1-3센티미터의 작은 선들이 모여 마치 빗살무늬와 흡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빗살무늬와 같은 선들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방식의 묘사기법은 형태의 분해를 통한 재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선은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성립시키는데 기능한다. 이로 인한 이미지의 명료성이야말로 사실성을 증폭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선은 형태를 결정짓는데 쓰인다. 즉 형태의 윤곽을 포함하여 그 전체적인 형상을 완결하는데 쓰인다. 선을 중심으로 하는 그림은 애매하거나 모호한 데가 없다. 그러고 보면 화면 전체가 단속적인 선의 집합 및 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이 명료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부드럽게 펼쳐지는 붓 터치와는 사뭇 다른, 자기주장이 뚜렷한 형상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애매모호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명명백백한 인상이다. 그러기에 명쾌하고 발랄하며 쾌적하게 느껴진다.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렇듯이 명쾌한 이미지는 무공해의 숲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싱그러운 대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옮겨놓고 싶다는 열망의 산물이다. 청정한 숲의 공기와 태양광에 의해 낱낱이 드러내는 물상의 존재방식은 진실의 표현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 모두가 한꺼번에 다가오는 듯싶은 시각적인 압박을 주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물론 원근법과 명암에 의해 공간적인 깊이 및 거리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비가 내려 시야가 맑은 날은 근거리와 원거리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먼 거리의 풍경이 보통 때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시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시각적인 변화를 맛보게 된다. 상투적인 원근법이나 명암보다는 그 자신의 눈을 신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청정한 자연의 공기를 통해 인지하는 소나무 숲의 공간감은 시각적인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은 오로지 진실의 표현일 따름이다. 보이는 사실과 느낌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미적 감흥 및 표현충동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소나무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실제의 소나무를 보는 것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지각하지 못하는 노송의 지혜가 담긴 속말을 진솔하게 받아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 상 원 (金常元) Kim, Sang won

1957년 울산 생
충북대학교 및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972 (15세) 유미다방 (울산)
1992 갤러리 도올
2005 서호갤러리
2005 공화랑 (전관)
2006 공화랑 (전관), 서호갤러리 (전관)
2007 관훈갤러리 (전관)
2009 갤러리 이즈 (전관)
2010 인사아트센터
2011 갤러리도올 초대

아트페어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2007·2009, COEX)
화랑미술제 (2008,2009,2011 BEXCO,COEX)
서울오픈아트페어 SOAF (2009,2010,2011 COEX)

현재 전업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