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현 휴(休) 2010. 6. 2 - 2010. 6. 12

집어등, 발견된/재해석된 오브제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불빛이 바로 집어등이다. 물고기를 모으는 등이란 말 그대로 바다 속을 유영하던 고등어며 갈치 그리고 오징어와 같은 각종 어류들이 불빛을 보고 모여드는 것이다. 부지현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불을 밝히지 못하는 폐집어등을 수거해 이를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재생해낸다. 가녀린 와이어를 이용해 집어등 500개를 전시장 천장에 매달고, 전시장 바닥에는 같은 수의 사각형의 거울 상자를 설치해 위에 매달린 집어등의 상이 반영되게 했다. 그리고 조명을 설치해 벽에 집어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하는데, 투명한 유리 소재의 집어등과 거울에 비친 반영상 그리고 여기에 조명과 벽면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현란하면서도 섬세한 빛의 향연을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비록 집어등 스스로는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거울과 조명을 이용한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마치 집어등이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유사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 밝기로 치자면 집어등이 실제로 발하는 빛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오히려 이로 인한 은근한 불빛이 마치 멀리서 밤바다를 통해 집어등을 볼 때와 같은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몽롱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나아가 유리 소재의 집어등의 표면에서 점멸하는 불빛의 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집어등이 꿈을 꾸듯 깜박이는 것 같다. 비록 그 스스로는 빛을 잃고 버려졌지만, 이렇게 폐기처분됨으로 인해 오히려 일종의 꿈꾸는 오브제, 몽롱한 시적 감흥을 자아내는 미학적 오브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작가에 의해 발견된 오브제, 작가에 의해 해석된 오브제라는 일종의 심미화의 과정이 작용한다. 말하자면 집어등이 잃어버린 불빛(여기서 불빛은 생명의 불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을 작가가 되살려주는(되돌려주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상황(폐집어등)을 미학적인 상황(꿈꾸는 오브제)으로 탈바꿈시켜놓는 것과 같은 일종의 비의적이고 연금술적이고 주술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작가는 폐집어등을 하나씩 어렵사리 구하다가, 마침내 자동차로 치자면 폐차장 같은 곳을 찾아내고 그곳을 통해 손쉽게 대량의 집어등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폐차장이나 고물상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용도를 다해 폐기처분된 공산품 쓰레기들이 마지막으로 모이고 해체되는 일종의 무덤과도 같은 곳이다. 이를테면 문명의 무덤이라고나 할까. 주지하다시피 신사실주의자들은 이런 문명의 무덤에 매료돼 미술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신사실주의자로 불려진 것은 리얼리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 때문이다. 즉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의 리얼리티는 이런 일상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각종 공산품들에서 찾아져야 하고, 특히 그 용도를 다해 폐기처분된 공산품 쓰레기들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더욱이 공산품 쓰레기들은 이런 리얼리티의 재정의와 함께 일상의 예술적 전용마저 가능하게 해주질 않는가. 공산품은 버려진 순간 정체성의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람과 함께 해온 시간의 지층이 고스란히 누적돼 있고, 사람이 남겨준 삶의 흔적이 그대로 축적돼 있는 그것은 친근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어떤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일종의 미학적 오브제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런 미학적 오브제의 생산과 관련이 깊다. 이로써 오브제를 쌓거나 열거하는 식의 어셈블리지, 그리고 이를 전시공학의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설치미술이 미술표현의 방법론을 눈에 띠게 확장시키고 개조한 것은 알려진 바와 같다. 이와 함께 작가의 작업은 속된 말로 쓰레기를 재활용한 것이란 점에서 소위 리사이클링의 한 사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공산품들처럼 공장에서 막 출고될 당시의 새 집어등은 그렇지 않겠지만, 폐기된 집어등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자세히 보면 별반 외상이 없이 멀쩡해 보이는 것들 사이로 기름때가 묻은 것들, 흠집과 스크래치가 나 있는 것들, 안쪽에 전구가 깨진 것들, 필라멘트가 녹 쓴 것들, 그 속에 물이 고여 있거나 물기가 말라붙은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이 보이고, 이도저도 아니면 표면에 내려앉은 먼지의 두께가 다르다든지 전구가 마지막으로 타면서 생긴 그을음의 정도가 다 다르다. 공장(요람)에서 출고되면서부터 폐기될 때(무덤)까지 집어등이 겪게 되는 과정은 그대로 삶의 과정을 닮아있다. 출고될 때는 서로가 닮았지만, 폐기될 때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만큼, 그동안 각각의 집어등이 겪었을 사건도 다 다를 것이다. 깨지고 그을리고 터진 그 상흔들은 그대로 삶의 트라우마, 존재의 트라우마를 유비적으로 증언해주고 있다. 그리고 어슷비슷한 형태 속에 다른 사건들과 상흔들을 내포하고 있는 집어등처럼 일상 역시 매일같이 똑같은 나날들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다 다른 날들이다. 그 이면에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반복이라고나 할까. 이로써 이 집어등들은 일종의 삶과 일상의 메타포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집어등의 고향은 배 위며 바다다(물론 엄밀하게는 여타의 공산품들처럼 공장이라고 해야겠지만). 작가는 이 폐집어등이 상실한 고향을 되돌려준다. 유리등의 표면에 일일이 실루엣 형태의 배 이미지를 프린트한 것이다. 그리고 전시장 바닥에 설치한 거울상자의 한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속에 LED를 장착함으로써 천장에 매달린 각각의 집어등의 표면에 그 푸른 빛이 반사되게 했다. 이로써 비록 빛과 이미지의 형태로이긴 하나, 폐집어등에게 고향을, 푸른 바다와 배를 되돌려준 것이다. 결국 예술이란 이처럼 상징과 암시를 통해서만 실재를 흉내 내고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통해 버려진 것들을 다시 취하고, 잊혀진 것들을 재차 환기시키고, 죽은 것들에게 유사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가 예술이 아닌가.

작가는 원래 부식동판화 기법을 이용해 배의 이미지를 판화로 찍었었다. 그리고 근작에서 그 이미지와 프로세스 그대로를 집어등의 표면 위로 옮겨다 놓았다. 다른 모양의 배 이미지 5개와, 각 이미지 당 100개의 에디션을 적용한 일종의 입체판화 내지는 설치판화를 실현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평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판화가 마치 조각처럼 입체로, 설치로 확장되며, 그리고 여기에 빛과 그림자의 비물질적인 요소나 성질마저 도입해 사실상 공간설치로까지 무한정 확장되는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판화의 개념을 확대 적용하면 공산품(집어등) 자체가 이미 하나의 주형(판)으로부터 유래한 판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작가는 집어등 각각의 표면에 프린트된 배 이미지 하나하나에 에디션을 표기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이 공공연하게는 판화의 문맥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판화개념이 확장 적용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디 판화의 확장뿐이랴. 이와 함께 작가의 작업은 장르 구분의 경계(판화와 조각)를 넘어서고, 형식 구분의 차이(평면과 입체)를 넘나든다. 말하자면 그 저변에 소위 탈경계에의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충환

 

부 지 현 Boo Ji Hyun
2002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미술학과 졸업
2005 성신여자대학교 조형대학원 미디어.프린트 졸업

개인전
2010 7회개인전 설치(제주우수청년작가초대전)
6회개인전 설치(쿤스트독갤러리 기획공모전)
2008 5회개인전 설치,동판화-기획초대전(맥화랑, 부산)
4회개인전 설치 (토포하우스, 서울)
2006 3회개인전 설치 (갤러리 모앙, 제주)
2회개인전 평면-판화 (문예회관 전시장, 제주)
2004 休그리고 시간의 깊이 -동판화전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단체전
2009 제주도립미술관 개관기념전‘환태평양의 눈’
[국제전‘숨비소리’](제주, 제주도립미술관)
2008 환기미술관 공모작가 기획전-푸른빛의 울림(서울, 환기미술관)
스타벅스 삼성2호점 (서울, 스타벅스 삼성2호점)
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아시아 프라이즈 선정’(서울, 구서울역)
여미지 식물원 (제주, 여미지 식물원)
2007 대한주택공사 미술 장식품 공모당선
한국, 인도 국제교류전(인도)
소재로 부터의 발견 (서울, 추계예술대학교 전시실)
2006 헤이리 국제판화교류전(경기, 헤이리 예술마을)
크라코우 국제판화 트리엔날레(폴란드)
부산국제판화제(부산, 부산광역시청 전시실)
2005 서울청년미술제-포트폴리오전2005(서울,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