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희 '비밀의 정원, 유년의 정원' 10. 8- 10. 26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예술을 예술이게 해주는 계기는 무엇일까. 순수하게 미적향수를 목적으로 한 오브제를 생산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뻔한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끔 유도하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어떤 원형에 해당하는 것을 추출해 현대인이 상실한 고향을 일깨워줄 수도 있고, 무의식적 욕망과 리비도에 형태를 부여해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층위로 끌어내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일종의 변혁의지를 매개로 사회에 간섭하고 참여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 만큼 천의 얼굴이 가능한 것이 예술이다. 이처럼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지만, 그 중 강력한 정의로서 일종의 놀이충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놀이충동은 일찍이 인간의 근원적인 충동을 소재충동(감각적이고 질료적인)과 형식충동(이성적이고 관념적인)으로 나누고, 대립되는 이 두 충동을 화해시키는 제 3의 계기로서 유희충동을 든 쉴러의 <미적 교육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놀이충동은 그 자체 순수한 충동이란 점에서 삶의 잉여에 해당한다. 즉 삶의 관점에서 볼 때 없어도 그만인 것이지만(심지어 놀이충동에 의해 지지되는 예술은 철저하게 무용한 경우에 더 뛰어난 예술이기도 한데, 그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놀이와 예술이 삶의 관성과 대립되기 때문이다), 정작 삶을 의미 있게 해주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상실한 자연성과 관련이 깊고,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억압한 본능과 관련이 깊다. 결국 놀이충동은 예술을 매개로 하여 현대인이 상실한 자연성과 본능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동력일 수 있다. 상실한 것들, 잃어버린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꾀한다는 점에서 금기시되고 터부시된 것들과 강하게 연동돼 있는 것이다. 신경희의 작업은 이런 놀이충동에 의해 견인되며, 소꿉놀이나 인형놀이와 같은 유년의 놀이에 대한 기억과 재생에 의해 뒷받침된다.

신경희는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사물이나 방 그리고 공간을 미니어처로 제작한다. 그리고 이를 사진으로 찍고, 그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 일정한 조작과정을 거친 연후에 확대 복사해 디지털프린터로 출력한다. 처음엔 소파나 의자, 장롱과 탁자, 침대와 베개 등의 소품을 재현하다가, 이후 점차 그 소품들이 놓여진 방과 공간에로까지 확장된다. 미니어처를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 역시 일정한 변화가 엿보이는데, 처음에는 압축 스티로폼이나 나무(벽체나 가구) 그리고 천(침대커버와 커튼) 등을 이용해 모형을 만들다가, 근래에는 그 실재감을 더하기 위해 소형 타일이나 심지어는 실제로 불이 켜지는 모형 등(아마도 건축모형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기성품들일 것이다)을 차용하는 등 재료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제작된 미니어처를 찍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사진의 연출이 가능한가 하면, 컴퓨터를 이용한 조작과정을 통해서는 주로 불필요한 부분을 지우거나 흐릿한 빛과 같은 색채효과와 음영을 조율하는 편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사진은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도맡는 것 같다. 실재감을 더하는가 하면, 일종의 마술과도 같은 환영적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미니어처를 감싸고 있는 무슨 캐비닛 같은 사각형의 박스와 단절된 채 그 속에 담겨진 구조물만을 클로즈업한 사진들을 보면 영락없이 실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엄밀하게 말해 만들어진 실재, 조작된 실재, 연출된 실재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현실과 혼동할 정도는 아니지만, 실재와 가상,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속해져 있는 것 같은 특이한 공간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일종의 경계에 대한 인식, 사이와 틈에 대한 인식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이 공간경험은 현실감이나 실재감을 강화해주는 동시에 이를 거둬가 버리기도 한다. 즉 현실감에 빠져 그 자체를 현재하는 실재공간인 양 착각할 수도 있지만, 알다시피 재현된 것은 작가가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이며, 그 불완전한 기억의 편린들과 조각들을 무슨 퍼즐 맞추기라도 하듯 재구성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작가가 재현해 놓은 것은 유년의 기억이며, 그 방이나 가구들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비가시적이고 실체가 없는 아우라와 같은 것이다. 가구가 아닌 그 가구가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며, 방이 아닌 그 방이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감정 같은 것이다. 침구의 부드럽고 따뜻했던 촉감이며, 커튼자락을 흔들던 미풍에 대한 우호적인 기억이며, 장롱 속에 숨어있던 두렵기도 하고 안온하기도 했던 설렘 같은 것이다.


그 기분, 그 감정, 그 설렘을, 그 비가시적 실체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가시화할 수 있는가. 작가의 작업은 설핏 보면 실제를 방불케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런 비가시적 실체를 암시하기 위해 조작하고 연출한 흔적들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 이미지들은 표백되고 탈색된 듯 하얗다. 유년의 공간은 순수하기 때문에 하얗고, 흐릿한 기억을 재생한 것이기 때문에 하얗다. 그 공간은 하얗지만 창백하지 않고, 밝지만 차갑지 않다. 밝고 따뜻한 공기에 감싸인 채 보호받고 있는 것 같은 안온한 기분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그것이 유년의 기분이나 감정을 되살려낸 것인 만큼 어떤 비실재감이나 비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곳에는 유아가 어른의 세계로 편입하기 위해 억압한 것들이 억압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간직돼 있고, 차이와 다름과 구분을 강요받기 이전의 자족적인 세계가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작가는 적어도 작업에서만큼은 유년의 기억에 머물러 있고, 어른이 되는 것이 그 기억을 철회하는 것이라면 그 기억을 멈출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유독 작가에게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경향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모든 어른들에게 잠재돼 있는 욕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얻는다. 사람들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주는 저마다의 유년(혹은 원형)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사는 법이다. 나아가 그 자체가 어쩌면 예술의 존재이유와도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징과 기호와 언어로 구분되고 지시되고 명명되기 이전의 사물세계, 모든 사물들이 경계를 허물고 서로 스며들고 혼입되던 세계를 회복하는 것, 한마디로 말해 꿈꾸기가 아니라면 예술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로써 신경희는 일종의 미니어처 모형 만들기, 사진 찍기, 컴퓨터 프로세싱, 그리고 디지털프린트 등 설핏 이질적으로 보이는 일련의 지점들을 한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그 결과물은 특정의 장르에 한정되지 않으며, 다양한 형식과 방법의 지점들을 넘나들고 통합한다. 현실적인 이미지처럼 보이는가 하면, 그 실체감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아득하고 멀게도 느껴진다. 그 이미지들은 무엇보다도 현대인이 상실한 것들, 유년의 기억들, 놀이의 기억들, 그 순백의 눈만큼이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들에 안기게 만든다(모든 유년이 순수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그 기억만큼은 순수해야 한다).

 

신경희 SHIN KYOUNG-HEE
2007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판화과 졸업
2004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현 재 한국 현대판화가 협회, 성신 판화, 한국 북아트 협회 회원

개인전
2008 제3회 개인전 (동산방 화랑, 서울)
2007 제2회 개인전 (갤러리 도올, 서울)
2005 제1회 개인전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수 상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 선정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BELT 선정작가- 판화미술진흥회
2006 크라코우 국제판화 트리엔날레 ‘Mention' (현대아트갤러리, 폴란드)
제26회 한국현대판화공모전 ‘Art In Culture’상 (스페이스 이비템, 헤이리 예술마을)
2005 제26회 신라미술대전 ‘특선’ (서라벌 문화회관, 경주)
제25회 한국현대판화가 협회 공모전 ‘특선’ (세종문화회관, 서울)

단체전
2008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 (아람누리 미술관, 고양)
복제시대의 판화 미학-EDITION (경남도립미술관, 경남 창원)
2008 성남국제북아트페어 (성남 아트센터)
2007 국제현대멀티플아트 (경남도립미술관, 경남 창원)
BIPAF 2007 부산국제판화제 (부산광역시청 전시실 전관, 부산)
4-th Matrices International Exhibition (Duna Gallery, 헝가리)
The Trend of Korean Contemporary Print of 2000's in Russia (노보시비르스크 미술관, 러시아)
제25회 성신판화 (갤러리 라메르, 서울)
Picnic 전 (갤러리 리즈, 경기도)
2007 서울 국제 북아트전 (COEX 태평양홀, 서울)
한국북아트협회 20인 초대전 (파주 두성종이 페이퍼 갤러리)
2006 프린트 스펙트럼-from plate to digital-전 (선화랑 기획, 서울)
‘이상한 초대‘전 (갤러리 스케이프 기획, 서울)
MediaEdge-From the Movable Image전 (사디 스페이스갤러리 기획, 서울)
‘판의 공간’전 (추계예술대학교 갤러리, 서울)
크리스마스 소망전 (갤러리SP 기획, 서울)
제3회 서울 국제 북아트전 (COEX 인도양홀, 서울)
2005 제7회 한국미술우수대학원생 초대전 ‘지성의 펼침전’ (단원전시관, 안산)
제2회 서울 국제 북아트전 (COEX 태평양홀, 서울)
크리스마스 소품전 (갤러리 가이아, 서울)
2004 국제 소형판화 트리엔날레 ( 라띠아트미술관, 핀란드)
제2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