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민선 '덜 죽은 자들' : 개념과 감각의 어긋남 9. 24- 10. 5


태초에 잉여가 있었다. (아사다 아키라)

미학 김상우

1.아키라는 태초의 ‘하나님 말씀’을 한 문자만 바꿔친다. 말씀과 잉여의 차이는 당연히 문자로만 끝나지 않는다. 신의 율법을 갈음해 문명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명은 자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연히 출현한 이물질이다. 그래서 아키라가 찌꺼기로 표현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있으나 없는 척’한다. 백지에 무엇인가 썼다가 지워낸 다음을 생각해 보라. 그곳은 전과 같이 백지처럼 보이지만, 백지가 아니다. 지워낸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움의 존재’라는 것이다. 말 한대로 일종의 역설이기도 하고, 자기기만이 아닐 수 없다. 문명의 질서는 언제나 그랬다. 신의 입김이 사라진 회화를 생각해 보라.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환영을 구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아키라는 ‘잉여’에 ‘×’를 쳐서, ‘지움의 흔적’을 명기한다. 그것이 문명의 본질이라고. ‘자연Physis’과 ‘인공Poesis’은 그렇게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2.이해민선의 작업은 이러한 불화가 가득하다. <덜 죽은 자들>의 면면을 보라. 기계와 생물이 대립하고, 도면과 형상이 갈등한다. 이것은 초기 작업 때부터 지속된 것이다. 예를 들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2005)을 보자. 장난감 돼지의 머리를 따고나서, 멸치머리를 ‘이식’했다. 수 백 여개를 만들어서, 벽에다 장식하듯 붙였다. 결합된 것들도, 결합된 방식도 모두 이질적이다. 이러한 면면이 새롭다고 할 수는 없겠다. “무엇보다도, 해부대 위에서 재봉틀과 우산의 뜻밖의 만남과 같이 아름다운 것!”(로트레아몽) 초현실주의는 일찍이 백년 전에 ‘병치’를 예술방법으로 구사하며, 고전주의적 ‘조화’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똑같진 않다. 당대의 ‘악취미’로 등극한 로트레아몽의 충격과 달리, 이해민선의 방식은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어긋남’이 있을 뿐인데,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조차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사실 초현실주의는 병치를 했다곤 하지만, 철저히 개념적이었다. 반면에 이해민선의 경우 그 역할을 감각이 수행하는 탓에, 이상해 보이는 것이 제곱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자연과 인공의 논리적 대립은 역사에 걸쳐 지속됐다. 문명의 기틀인 철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있음과 없음, 감각과 개념, 육체와 정신 등등, 철학의 분과에서 여러 범주로 번역되어 갈등과 봉합과 화해를 거듭했다. 특히 개념과 감각은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대립했으며, 근대철학은 온힘을 기울여 두 가지를 화해시키려 노력했다. “경험적 개념에 따른 종합의 통일은 초월적 통일의 토대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우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상들이 영혼에 쇄도할 수 있다…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과 일치한 연결이 모자랄 테므로, 지식과 대상의 전 관계가 사라질 것이다.”(칸트) 하지만 어김없이 위기는 찾아왔고, 쇼펜하우어가 신호탄을 알렸다. 그는 이성의 파산을 선언하고, ‘의지’를 종합의 단위로 설정했다. 그것은 낭만주의가 역사에 등장한 서곡이었다. 이후, 이성이 몇 번 역습도 했지만, 비이성은 진영을 단단히 방어해 냈다. 그리고 예술은 그 선봉에 서서, 이성과 의미를 넘어선 자족적 존재가 된다. “예술작품에 내용이 없다는 의미는 세계에 내용이 없다는 의미와 전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둘 다 내용이 없다…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손탁) 감각만을 사랑하라, 복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4.이해민선은 ‘개념’과 ‘감각’의 경계를 자기 뜻대로 허문다. 감각이 개념을 집어 삼킨다고 말하면 정확할까. 여기서 상상의 해부실험을 해보자. 토끼든 개구리든 생명이 죽어 누워 있겠지, 날이 잘 선 칼을 배에 긋고, 속을 헤집을 것이다. 그러면 시뻘건 출혈과 함께 내장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계장치가 뒤죽박죽 나온다면. 생명의 외형에 기계의 속내. 기계와 생명을 엮는 그녀의 ‘함수’는 그렇게 ‘뒤바뀐 식’이다. <덜 죽은 자들>의 연작에서 도면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라. 대형마트, 아파트, 수족관, 발코니 등등, 인공의 구조물의 뼈대를 조각내어 외형상의 생명체에 붙여 넣는다. 이 때문에 도면의 강력한 개념적 성질은 흔적만 남고 사라진다. <임대공간변이체>(2006) 때보다 간격이 더욱 벌어진 셈이다. 이때만 해도 형상은 기계의 논리를 얼추 따라, 로봇의 형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로봇에서 인간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덜 죽은 자들>에서 동물의 형상으로 지위가 하강한다. 결국 더욱 자연에 가까워지며, 지적된 짝패의 갈등도 심화된다.

5.손탁이 ‘내용’을 공격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예술은 ‘무엇’을 구태여 담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억지로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만 가졌다. 신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쳐서 주체의 고백까지, 오랫동안 예술은 지겹게 자신의 터전을 바깥에 내줬다. 현대에 이르러 자신만의 목소리를 집요하게 외쳤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용과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가가 예술 외부의 부담을 덜고, 자기 뜻대로 표현할 자유가 늘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적어도 전처럼 한쪽만 주도권을 쥔 것은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이해민선의 경우도 그렇다. 그런데 결합하는 방식이 앞서 지적대로 흥미롭다. 이 점은 제목에서 일찌감치 나타났다. 덜 죽은 자들, 생명은 알다시피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것을 양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어긋남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6.마지막 어긋남의 짝패는 언어와 형상의 범주로 귀착된다. 의미의 논리는 조형의 원리와 다르다. 수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전자는 ‘자의성’에 바탕하고, 후자는 ‘유사성’에 기초한다. 이해민선은 이것도 엉클어트린다. 의미의 논리로 형상을 주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긴장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마지막 덤 하나. 아키라의 저것은 문장일까 그림일까. 그것이 진정한 수수께끼고, 이해민선이 고민할 거리겠다.

 

이해민선 Lee min sun

개인전

2008 덜 죽은 자들 ( 갤러리 도올 )
2006 임대공간 변이 체 ( 갤러리 킹 )
2005 피가되고 살이되는( pig and pink)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기획전)
2004 ‘안 유명한 작가의 개인전’ (갤러리 창 -석사학위 청구전 )

2인전

2003 아트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기획공모 선정전)
RE-MAKE (스페이스 빔 - 기획공모 선정 전)

주요 기획전

2008 창작해부학 ( 경기도 미술관 )
cornette ( 파리, 프랑스 )
드뷔로아포넴 ( 파리, 프랑스 )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 사비나 미술관 )
2007 art-lan-asia ( zaim gallery ,요코하마 , 일본 )
미술과 수학의 교감 ( 사비나 미술관 )
I robot ( Artpark )
신나는 미술관 ( 경남도립 미술관 )
디지털 확성기 ( 덕원갤러리 )
2006 젊은 모색 ( 국립현대 미술관 )
광주비엔날레 - 아트마켓 (광주 시립민속박물관 )
표류일기 (동덕아트갤러리)
2005 청년미술 - 포트폴리오 2005 ( 서울 시립미술관 )
pick and pick ( 대안공간 미끌 )
치환전 ( 샘표 갤러리 )
2004 광주비엔날레 상상릴레이 (광주비엔날레 제 4전시관)
새로운 시각 (대안공간 풀)
스토커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프레파라트 어머니 지구 (갤러리 스케이프)

예정전시

2008 10 ' I robot ' ( 아트파크, 서울 )
2008 10 과학연구센터 설립기념전 ( 과학연구센터 , 과천 )
2008 11 과학정신과 미술 -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 kaist 대학교 , 대전 )

 


2001 용인대학교 회화과 졸업(B.F.A)
2004 동 대학원 서양화 전공 석사 졸업 (M.F.A)

2006 , 2008 문예진흥기금 수혜
작품소장 하나은행 , 용인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