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증거없는 회화 5. 7 - 5. 25

채움, 쌓임, 흐름

평론가. 정  현

나는 아직도 노란색과 파란색 , 그리고 초록색을 볼 수 있습니다 . 흰색은 사라졌거나 , 아니면 회색과 혼동되기 일쑤입니다 . 빨간색은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그러나 나는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 , 그래서 언젠가 시력이 나아져 그 위대한 색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시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그 색 , 수많은 언어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 색을 말입니다. (...) 나는 그런색의 세계 속에서살고 있습니다 .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칠일 밤 중에서 .

 

보르헤스는 실명이후, 어둠의 세계를 얻었다고, 매우 용기내어 얘기했다. 실명은 유전이지만 용기는 유전이 아니었더라는 그의 말은 '어둠의 세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대신 설명해 주었다. 실명은 실체적 이미지를 시각으로 감지할 수없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는 기억에 의존하면서 언어 자체에 더더욱 몰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내겐 예술행위의 영속성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처럼 실명이란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실명의 삶이 완전한 어둠의 세계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 의외의 색이 등장한 세계였다는 그의 증언으로부터 나의 글을 시작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경의 작업은 색이 주제이자 곧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 역시 그런 색의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에게 색은도구 이상의 의미였을까 ?  2000 년도 독일유학시절 제작한 색깔적기란 텍스트북에서 그녀는 모두 140 개의 색을 적어넣었다 . 체계화된 색이름이 아닌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색이름은 내겐 이 경 작업을 읽기 위한 가이드북이 되었다 .

비논리적이고 때론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인 느낌마저 드는 색깔적기는 1. 심심한 색으로 시작해서 78. 생 색 을 거쳐 140. 민감한 색으로 끝이 난다 . 색깔적기는 한 페이지에 모두 20 개의 색이 적혀져있고 왼쪽엔 한글 , 오른쪽엔 독일어가 적혀있다 . 숫자의 나열은 중요하지 않으나 하나의 색이 다음에 나올 색을 인도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색띠회화가 완성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 색깔적기는 작가의 색분류법을 대신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주관적이고 자유기술법에 가까운 무의식적인 색채 사용법을 언뜻 넘겨볼 수 있는 확장된 드로잉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   


1. 채움

이 경은 방산시장에 가서 덕테잎 (duck tape) 을 구매한다 . 절단되지 않은 테잎을 다양한 크기로 절단하면서부터 이미 작업은 시작된다 . 캔버스에 밑칠을 한 후 테잎을 붙여 첫번째 공간을 열어준다 . 대부분 한쪽 면 끝에서 시작되지만 간혹 중간부터 색띠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 긴 수평의 면이 준비되면 그 속을 중간색의 아크릴물감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 물감의 발색에 따라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여닐곱번을 바르는 과정은 공간속에 시간이 중첩되는 일종의 숙성의 기간이다 . 색띠 하나가 완성된 후 다시 새로운 공간을만든다 . 최초의 색띠는 출발점이다 . 색띠와 색띠 사이의관계는 스스로 연동되는 듯 보이지만 작가의 팔레트는 끊임없이 새로운 색 , 차이를 가진 색을추구한다 . 이런 집착은 예술가의 생리일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 예를 들어 , 하얀 그림의 경우 색띠들 사이의차이는 미세해서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 아니 그보다는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섬세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 완전한 순백도 아닌 푸른빛이나 혹은 노란빛들이 흰색 사이에서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 . 색띠는 그처럼 시간의 경과 , 의식의 변이를 미세하게 감지하는 매우 감각적인 시공간적 경험으로 채워져있다 .


이 경의 색띠들은 층을 이루면서 완성된다. 하나의 공간은 색으로 채워지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마치 접혀져있던 세상의 표면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이 경의 회화는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발췌된 시공간의 집합이다. 그리고 하나의 시공간-색띠는 연속적으로(progressive) 펼쳐진다.

-전시서문 중 부분발췌-

 

Lee Kyong 

2000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예술대학교 마이스터슐러 (prof. Klaus Stuempel),독일

2000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예술대학교 졸업 (Diplom), 독일

199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BFA)


개인전

2008   증거없는 회화, 갤러리 도올 초대전, 서울

2007   평등한 매력, 영은아티스트 릴레이전, 영은미술관, 경기도 광주

2006     채집된 풍경들, 세오 영아티스트전, 세오갤러리, 서울

2003     DailyScape, 덕원갤러리 기획, 서울

2002     Site-Zeit 2002, 덕원갤러리 기획, 덕원 갤러리, 서울

2000     니더작센주 법원, 브라운슈바익, 독일

 - Wasser, 홀리데이인 호텔, 하노버, 독일

1998     북부독일방송국, 브라운슈바익, 독일

         - Formlos-Formbar, 보가파빌론, 브라운슈바익, 독일

         - 크라이스하우스, 헬름슈테트 문화부, 헬름슈테트, 독일

1996     Kunst im Flur, BKB, 헬름슈테트, 독일


그룹전 (selected)

2008     SeMA 2008,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7    Anonyme Zeichner No. 6, Meinblau e.V. 베를린, 독일

2006     Pre-국제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숨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

 - 선과 면이 만들어낸 사유의 풍경, 세오 갤러리 기획, DECOYA Inc. 서울

 - 길-자연과 문명 사이를 걷다, 국제아트펜스 디자인 초대전, 한국토지공사, 판교

2004     스케치(sketch), 완성을 위한 미완 혹은 미완의 완성, 드맹갤러리, 서울

2003     New Image Artists- 대구 아트 엑스포 2003, 대구전시컨벤션센터, 대구

2002     블루, 갤러리 라 메르, 서울

         - 오픈스튜디오, 쌈지 스페이스, 서울

2001     쌈지싸이트 스페시픽_만남의 접점에서, 쌈지스페이스, 서울, 랜스 펑 갤러리, 뉴욕

2000     마이스터슐러전, 빌케베어케, 브라운슈바익, 독일 

         - 프로젝트-7입구, 폭스바겐AG, 볼스부르그, 독일


RESIDENCIES/PROGRAM

2007     ARTIST1:1CRITIC, Projectspace Sarubia+Brainfactory 기획,

              Artist Forum International(AFI) 주관

2006_ 2008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장기입주, 경기도 광주

2001_ 2002  쌈지스페이스 스튜디오  레지던시 장기입주, 서울